2025. 3. 18. 19:34ㆍ명상&쉼터/소소한삶
이 시대의 사랑은 유리로 된 성처럼 반짝인다. 광고 속 백화점 쇼윈도에는 사랑의 증표로 홍보되는 명품 가방이 진열되고, SNS에는 연인에게 선물한 고가의 시계 사진이 넘쳐난다. "돈이 사랑을 증명한다"는 속삭임이 도처에서 메아리친다. 그러나 이 빛나는 유리 조각들 사이로 스민 균열을 보았는가? 물질적 풍요가 사랑의 깊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착각, 그 이면에 놓인 정서적 황폐함에 대한 회의가 서서히 고개 든다.
최소한 내가 청춘이었던 그때는 물질보다는 정신을 더 중요 시하던 시대였다. 캠퍼스에서 니체를 이야기하고 없어도 행복했던 그 시절. 돌아 갈 수는 없어도 잊을 수는 없다.
소비주의가 만든 '사랑의 표준화
21세기의 사랑은 자본의 논리에 포획당했다.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매장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각종 기념일은 소비의 의무화된 의식으로 전락했다.
1년에 12번의 '연인을 위한 날'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진정성은 금액표가 붙은 상품 뒤로 사라진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강제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월급루팡'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청년들은 연애 비용 마련에 허덕인다. 데이트 비용 부담이 연애 포기의 이유라고 말하는 20대 젊은이가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이 경제력 검증의 장이 된 시대, 진정성보다는 지갑 두께가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디지털 유목민들의 정서적 기아
인스타그램 속 #연애스타그램 해시태그 아래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쇼핑 리스트는 현대인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가상공간에서 과시되는 물질적 증거들 사이로, 진짜 마음의 소리는 묻힌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소유(Having)와 존재(Being)의 모드"를 구분하며, 진정한 사랑은 소유 욕망을 넘어선 존재의 교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연애는 마치 신용카드 포인트 적립처럼 누적되는 매칭 횟수로 가치가 측정된다. 0.5초 만에 스와이프되는 프로필 사진들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상품화된 속성들의 조합으로 환원된다.
상품화된 감정의 역설적 결핍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현대사회는 '사랑=물질공급'이라는 등식을 강요한다. 이데올로기 비평가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처럼, 자본주의는 인간관계까지 시장 논리로 재편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대화 부재를 가리는 배경 음악이 되고, 비싼 선물이 마음의 빈틈을 메우는 패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하버드대 80년 간의 행복 연구가 증명하듯, 인간의 만족도는 물질적 축적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몇년전 일본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연인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 1위는 "손글씨 편지"(47%)였으며, 명품 액세서리(12%)는 5위에 그쳤다. 이는 화폐가치가 아닌 정성의 가치에 대한 본능적 갈망을 보여준다.
균열 사이로 스민 빛
물질주의의 폭풍 속에서도 인간성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그 예이다. 값비싼 선물 대신 함께 만든 수제 케이크, 호화로운 여행 대신 텐트 치며 보내는 캠핑 데이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이는 과시적 소비가 아닌 공유의 즐거움을 찾는 세대의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 존재'처럼, 진정한 사랑은 타자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대할 때 피어난다. 인간의 심층에는 여전히 물질을 초월한 연결에 대한 열망이 잠재해 있다.
파편을 모아 새기는 사랑의 언어
이 시대의 사랑이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있을 뿐이다. 프랑스 시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을 기억하자. "너를 길들인다 함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 물질적 사랑의 유혹에 맞서, 우리는 이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을 재발명해야 한다.
사랑의 본질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두 영혼의 대화임을, 값싼 SNS 스티커보다 진짜 눈물방울이 소중함을, 호화로운 선물보다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진정한 증표임을 이 시대는 깨달아야 한다.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던 물질적 사랑의 허상이 깨질 때, 그 틈새로 진정한 인간적 온기가 스며들 것이다. 결국 사랑이 최고인 시대를 만드는 건 명품백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용기다.
https://youtu.be/ZJ83g3IEolQ?si=9TtFtk04YH8HvzcC
Morris Albert -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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