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직접청구권
-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 이직시 협상방법
- 물타기
- 헤어지는 신호
- 부자되는법
- 국민연금
- 영화추천
- 미장전망
- 이직하는 법
- adc대장주
- 쿨라매기 매매기법
- adc 관련주
- 대장주
- 전직하는 법
- 나스닥 중국 etf
- 잘못 알고 있는 의학상식
- 하락장 대응방법
- 한국어 팝송
- 애정 끝신호
- 부모가 준 돈 절세방법
- 연애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
- 쿨라메기
- 저축
- 혈당
- 젤세방법
- 교통사고 발생시 대처방법
- 주식투자의 기본
- 스카웃 협상
- 직장 옮기기
- Today
- Total
어쩌다 투자
그녀의 빈 자리 본문
그녀의 빈 자리
유튜브 알고리즘은 마치 내 마음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러나올 때마다 화면 속 가로수 길은 내 어깨 너머로 스며든 겨울 햇살과 겹쳐진다. 목소리는 오래된 편지처럼 종이결을 타고 내려오고, 피아노 선율은 창밖에 서리처럼 앉아 있다. 손가락이 멈춘 채, 나는 그 빈 자리를 본다. 스크린에 비친 내 흐릿한 얼굴 뒤로, 오래전 그녀의 그림자가 스치는 순간이다.
교실 창가에 앉았던 그녀는 언제나 지우개 가루를 털듯 가볍게 웃었다. 봄바람이 책장을 넘기면 머리칼이 나뭇가지처럼 흔들렸고, 종이 비행기처럼 날아온 메모에는 “오늘도 안경닦아줄게”라 써 있었다. 그 시절 사랑은 소풍 도시락처럼 소박했다. 빵 껍질을 몰래 내 접시에 올리던 손가락, 체육관 뒤 계단에서 나눈 핸드폰 이어폰, 수업 중 교과서 속에 숨겨둔 편지… 한 뼘짜리 책상 밑에서 스쳤던 우리의 무릎은 번개처럼 따뜻했다.
그녀는 우산 없이 비를 맞는 걸 좋아했다. 6월의 첫 소나기가 떨어질 때면 교문 앞에서 발돋움하며 “같이 젖을래?”라고 묻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축축한 교복 소매가 닿을 때마다 심장이 종이배처럼 출렁이던 그 길을, 지금은 혼자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우산 살갗에 맺힌 빗방울들이 그녀의 웃음소리로 들리는 건, 아직도 시간이 멈춘 채 그날의 빗속에 서 있기 때문일까.
이별은 의문사처럼 찾아왔다. 대학 합격 발표 날, 그녀가 내 이름 옆에 없을 거란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철로 끝자락에 서서 기차 소리를 들을 때는 눈물이 돌을 삼키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건넨 종이학 날개에 “잘 가라”고 적힌 건 그녀의 필체가 아니었다. 오래된 교복 주머니에서 나온 사철당은 녹아서 찍지 못할 편지가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세월은 휴대폰 배경화면처럼 자주 바뀌었다. 어느 가을, 친구의 SNS에 우연히 스친 그녀의 결혼사진은 내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면을 꾹 눌러 저장하지 않은 사진 속, 그녀의 새하얀 웨딩드레스 주름살들이 내 젖은 눈가를 닮아 보였다. 축의금 계좌번호를 복사하다가 문득 떠오른 건, 옷깃을 여미던 그녀의 손가락이 추운 겨울마다 내 스카프를 묶어주던 기억뿐이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중년의 얼굴은 여전히 열일곱의 눈빛을 간직하려 애쓴다. 커피숍 유리벽에 기대어 흐르는 옛 노래가 사라질 때마다, 나는 유튜브 다시보기 버튼을 누르듯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만약 그날 교문 앞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면, 만약 기차역에서 “가지 마”라고 외쳤다면, 만약… 아니, 우리는 서로의 ‘만약’을 묻지 않기로 했지.
밤마다 책장 깊숙이 숨겨둔 러브레터를 펼치면, 종이 위 글자들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잉크 대신 마음으로 쓴 문장들, 이제는 해독할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린 사랑의 증거들. 가끔은 그 흐릿한 글씨 너머에서 그녀의 속삭임이 들릴 때가 있다. “너는 아직도 나를 찾고 있구나.”
이문세의 목소리가 잦아들면 추억의 필름이 걸린 영사기 소리가 난다. 휴대폰 화면이 어둠에 잠기기 직전, 잠깐 스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교실 창가에 앉아 지우개 가루를 털고 있다. 알고리즘은 내일 또 다른 옛노래를 권하겠지만, 오늘 밤 내 유튜브 검색창에는 ‘옛사랑’이 열한 번 재생되었다. 눈꺼풀을 적시는 건 모니터 빛인지,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비인지, 스크린에 닿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온도인지.
창밖에 첫눈이 내린다. 새하얀 눈발들이 그날의 우산 없이 걸었던 비처럼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같이 젖을래?”라고 속삭이는 겨울밤, 나는 유튜브를 멈추지 않은 채 창문을 활짝 연다. 차가운 바람이 책상 위 먼지를 휘날리며, 빈 자리에 앉은 눈송이가 잠시 동안 그녀의 숨결을 닮아간다.
'나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흙을 뚫고 올라오는 빛 (0) | 2025.03.07 |
---|---|
강물 같은 부, 그 흐름을 읽는 자 (1) | 2025.03.06 |
기분 좋게 하는 것 (0) | 2025.03.06 |
밤이 지나면 아침은 오는데 (0) | 2025.03.05 |
공허한 하루 (2) | 2025.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