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아래 숨겨진 마음

2025. 5. 29. 17:53명상&쉼터/그림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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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말을 눈으로 전하고 있다.     

화폭에는 그 어떤 배경도 없다.

텅 빈 어둠 속에서 오직 한 소녀가 빛을 받는다.

두 눈은 크고 투명하며,

살짝 벌어진 입술은 무언가 말을 걸 듯 머뭇거린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그녀는 누구일까?

이름도, 신분도, 마음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그 눈빛 안에 내가 있다.

내 슬픔과 내 그리움, 내가 묻어 있다.     

 

베르메르는 소녀의 외모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순간’을 붙잡았다.

시간이 멈춘 그 찰나,

누군가가 나를 돌아본 그 짧은 숨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언의 감정’.     

진주 귀걸이는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빛난다.

 

언뜻 보면 작고 단순한 장식품이지만,

그것은 말 없는 울림처럼 화면 전체를 감싼다.

진주는 완전하지 않다.

빛을 흡수하고 다시 부드럽게 반사하는,

흠 없이 반짝이지 않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더욱 진실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혹은 아무 말 없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일까?

삶에 지친 날,

말이 필요 없는 누군가의 눈빛에 위로받듯,

이 그림은 조용한 온기로 마음을 감싼다.     

진정한 대화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은 대화는,

아무 말 없는 순간에 피어난다.

소녀와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듣는다.

자신의 마음속 목소리를,

말하지 못한 지난날의 속삭임을.     

이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림 밖의 공기,

눈빛 사이에 흐르는 침묵,

그리고 그 침묵 안에 담긴 마음.     

말없이 전해지는 마음.

 

그것은 베르메르가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뜨겁게 남긴 메시지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마주친 적 있는,

눈빛 하나로 충분했던 그 순간처럼.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1664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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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Bach) - G선상의 아리아

https://youtu.be/nWFcvZ6UUbg?si=Wnh9QUgVpJTE6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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