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뜬 시간

고요의 깊이에서 피어난 수련     

 

그의 붓은 시였다.

물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빛과 시간을 그려냈다.

 

클로드 모네,

그는 말년에 지베르니의 연못 앞에 앉아 같은 풍경을 수백 번 바라보았다.

변화하는 햇살과 물빛, 안개와 그림자 속에서

그는 똑같은 수련을 수없이 새롭게 피워냈다.

 

수련 1905

 

     

‘수련 연작’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결,

침묵의 깊이,

존재의 본질에 닿고자 한 한 화가의 고백이다.     

 

처음 연못을 만들었을 때,

이 작은 정원이 인상파 회화의 정점이 될 줄

그는 알았을까.

일본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연못에는 수련이 피고, 버드나무가 드리워졌다.

그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스치며,

계절이 지나갔다. 모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수련과 일본다리  1897~1899

 

 

수련은 잠잠하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한한 변화가 깃들어 있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색,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반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화가의 마음.     

 

모네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색을 추구했고,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또렷이 보이지 않아도,

그는 물 위의 진실을 붓으로 느꼈다.

 

수련 1915

 

 

때로 화면은 추상처럼 흐릿하고,

때로는 맑고 고요하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명상 같았다.     

그림을 바라보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수련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있음’으로 말한다.

“그대로 괜찮다”

 

어느 하루의 너도,

무언가를 해내지 못한 너도,

조용히 숨만 쉬고 있어도 괜찮다고.   

 

  

수련 1915

 

 

우리는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에 휩쓸려,

정지된 시간의 아름다움을 잊고 산다.

모네는 말한다. 멈춰서 보라고,

눈앞의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라고.

수련은 피어나지도 않고,

지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다.

그리고 그 존재만으로 세상을 위로한다.     

 

모네의 수련은 어쩌면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그가 발견한 평화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고요,

그러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고요.     

그림 앞에 서면,

마음속에도 작은 연못 하나 생긴다.

그리고 그 속에 수련 한 송이 조용히 떠오른다.

그것이 모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언어다.

 

 

드뷔시 달빛으로 물드는 밤

https://youtu.be/sJ8EtgDXAHI?si=knpj0ccMpeZGxa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