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6. 15:36ㆍ명상&쉼터/그림쉼터
그림 앞에 선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늘은 피처럼 붉고,
인물은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침묵이,
고요한 폭풍처럼 화폭을 덮는다.
뭉크의 ‘절규’는 소리 없는 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포와 불안을 시각화한 고백이다.
1893년, 노르웨이의 어느 황혼 녘,
뭉크는 친구와 산책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현기증과 공황에 휩싸인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태양이 저물고, 하늘은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거대한, 끝없는 절규를 들었다.”
그 절규는 그의 귀에만 들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붓끝에서,
그것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공명으로 변했다.

그림 속 인물은 누구일까?
뭉크 자신일 수도 있고,
우리 모두일 수도 있다.
뒤편의 두 인물은 무심하게 걷고 있지만,
앞의 인물은 고립된 채 공포에 짓눌려 있다.
그는 외친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 모습은 현대인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군중 속의 고독,
말할 수 없는 불안,
설명할 수 없는 허무.
‘절규’는 현대의 마음을 미리 예언한 듯한 그림이다.
소셜미디어에 둘러싸이고,
끊임없는 비교와 속도에 지친 우리는 어딘가에 외치고 싶다.
“나는 괜찮지 않다”라고.
그러나 말하지 못하고,
들려주지도 못한다.
뭉크는 그 말을 그림으로 대신 남겼다.

이 절규는 괴로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아직 감각하고,
아직 인간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다리 위를 걷는다.
저마다의 내면에 절규 하나쯤은 숨기고 산다.
뭉크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고통은 예술이 되고,
고독은 연대가 되며,
비명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울림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춘다.
말 대신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알아챈다.
그림 속 절규는 결국,
우리 안의 소리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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