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오렌지, 삶을 닮은 정물

2025. 5. 22. 05:22명상&쉼터/그림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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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 폴세잔의 사과이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흰 천 위에 놓인 사과 몇 알,

그 옆에는 오렌지가 있다.

 

그림이라기보다,

우리의 식탁 어느 한쪽 구석을 슬며시 포착한 듯한 장면.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폴 세잔은 인생의 무게와 리듬을 그려냈다.

세잔의 정물화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그림이 틀렸다고 느껴질 만큼

접시는 기울어져 있고,

병은 균형을 잃은 듯 삐뚤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모든 불안정 속에서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완벽한 질서가 느껴진다.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The Basket of Apples 1895)

 

 

삶도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이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을 수는 없다.

조금씩 어긋나고, 흔들리고, 기울어진 틈 사이로

우리만의 조화가 만들어진다.

 

세잔은 그러한 삶의 본질을

사과와 오렌지라는 작은 세계에 담았다.

사과는 조금 울퉁불퉁하고,

오렌지는 고요한 둥글림을 지녔다.

그 둘은 색도 다르고, 질감도 다르지만

함께 놓였을 때 완성된다.

 

마치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의 일상을 이루는 것처럼.

세잔은 이 정물화 하나를 그리기 위해

사과 하나를 며칠 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는 단순한 과일에서

우주를, 시간의 흐름을, 빛의 변화를 읽어냈다.

 

빠르고 강렬한 인상주의와는 달리,

그는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사물의 본질에 다가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소비한다.

음식도, 풍경도, 사람도, 감정도.

그러나 세잔은 사과 하나를 통해

말한다.

 

Curtain, Jug and Fruit ( 1894 )

 

“잠시 멈추고 바라보라”라고.

 

그 둥근 과일 속에는

생명과 색, 무게와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물화는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 이야기가 있다.

사과는 생명을 품고,

오렌지는 햇살을 닮았다.

 

그림 속 과일들은 이미 짜인 것이지만,

그 정지된 순간 속에

삶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세잔의 정물 앞에 서면,

문득 나의 일상도 떠오른다.

설거지가 덜 된 싱크대,

흩어진 아이의 장난감,

냉장고 위에 굴러다니는 귤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삶의 풍경이자,

나만의 정물화가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나의 사과와 오렌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사과와 오렌지 (1899)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

https://youtu.be/2C4HopVIk9Q?si=ZQYWGdNub2r-Q2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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