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의 순간

2025. 5. 24. 06:28명상&쉼터/그림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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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찰나의 환상이다.

커튼이 오르고,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면 현실은 잠시 숨을 고른다.

 

에드가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는

그 찰나의 마법을 정지된 화면 속에 영원히 붙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마법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고요와 긴장에서 피어난다.

 

 

무대 위의 무희, 1878

 

 

화폭 속, 한 무희가 발끝으로 서 있다.

치맛자락은 흩날리고,

몸은 바람처럼 가볍지만,

그녀의 시선은 어딘가 멀고 단단하다.

그것은 관객을 향한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을 향한 집중,

혹은 극도로 훈련된 자세의 결실이다.

이 무희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노동자이며,

예술가이며,

삶의 무게를 지닌 존재다.

 

드가는 무희들을 수없이 그렸다.

그는 무대 위 찬란한 순간보다,

그 이면의 기다림,

연습,

피로에 더 많은 시선을 주었다.

 

 

Dancers, 1878 pastel

 

 

그에게 발레는 아름다움의 정점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노력으로 자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의 무희들은 늘 조금은 지쳐 있고, 외롭고, 깊다.

 

‘무대 위의 무희’를 바라보면, 나는 시간의 멈춤을 느낀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찰나.

그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였을까.

몇 번의 넘어짐과 인내가 이 포즈 하나에 담겼을까.

무희는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건너고 있다.

 

나는 무대를 바라보며 내 삶의 무대도 떠올린다.

나 역시 매일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때로는 중심을 잃을 듯 비틀거린다.

삶은 끊임없는 리허설이자 본무대다.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는 매일 그 위에 선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자세는 중요하다. 무희처럼 말이다.

 

 

Two Dancers on Stage, 1874 Oil on canvas

 

 

드가의 그림은 그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환호 없는 순간도 빛난다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향한 존엄은 그 자체로 눈부시다고.

그래서 이 그림은 아름답다.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삶의 결이,

너무도 진실되기 때문이다.

 

무희는 계속해서 무대 위에 선다.

드가의 붓이 멈추었어도,

그녀의 숨결은 그림 너머에서 여전히 움직인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무대에서 중심을 잡는다.

비틀거릴지라도, 그 찰나의 자세가 나를 지켜줄 것을 믿으며.

 

 

Three Ballet Dancers, 1879 Oil on canvas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 2악장

https://youtu.be/GCm4SNc0trU?si=ASd3KcUKXlAduo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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