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4. 06:28ㆍ명상&쉼터/그림쉼터
무대는 찰나의 환상이다.
커튼이 오르고,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면 현실은 잠시 숨을 고른다.
에드가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는
그 찰나의 마법을 정지된 화면 속에 영원히 붙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마법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고요와 긴장에서 피어난다.

화폭 속, 한 무희가 발끝으로 서 있다.
치맛자락은 흩날리고,
몸은 바람처럼 가볍지만,
그녀의 시선은 어딘가 멀고 단단하다.
그것은 관객을 향한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을 향한 집중,
혹은 극도로 훈련된 자세의 결실이다.
이 무희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노동자이며,
예술가이며,
삶의 무게를 지닌 존재다.
드가는 무희들을 수없이 그렸다.
그는 무대 위 찬란한 순간보다,
그 이면의 기다림,
연습,
피로에 더 많은 시선을 주었다.

그에게 발레는 아름다움의 정점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노력으로 자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의 무희들은 늘 조금은 지쳐 있고, 외롭고, 깊다.
‘무대 위의 무희’를 바라보면, 나는 시간의 멈춤을 느낀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찰나.
그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였을까.
몇 번의 넘어짐과 인내가 이 포즈 하나에 담겼을까.
무희는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건너고 있다.
나는 무대를 바라보며 내 삶의 무대도 떠올린다.
나 역시 매일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때로는 중심을 잃을 듯 비틀거린다.
삶은 끊임없는 리허설이자 본무대다.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는 매일 그 위에 선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자세는 중요하다. 무희처럼 말이다.

드가의 그림은 그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환호 없는 순간도 빛난다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향한 존엄은 그 자체로 눈부시다고.
그래서 이 그림은 아름답다.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삶의 결이,
너무도 진실되기 때문이다.
무희는 계속해서 무대 위에 선다.
드가의 붓이 멈추었어도,
그녀의 숨결은 그림 너머에서 여전히 움직인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무대에서 중심을 잡는다.
비틀거릴지라도, 그 찰나의 자세가 나를 지켜줄 것을 믿으며.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 2악장
https://youtu.be/GCm4SNc0trU?si=ASd3KcUKXlAduo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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