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7. 18:24ㆍ명상&쉼터/인생명언
"언젠가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조지 버나드 쇼의 이름 옆에 늘 따라붙는 이 문장은,
실체 없는 유언처럼 세상을 떠돈다.
그는 사후 화장되어 재가 집 정원에 뿌려졌으니 묘비가 남을 리 없었다.
그런데 버나드 쇼의 묘비 사진이라고 떠도는 것은
과거의 어느 광고에 나왔던 이미지가 전부이고,
그 이미지 하나만 곳곳에서 복사 붙여 넣기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가공의 묘비명은 그의 정신을 가장 정확히 포착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농담으로 넘나드는 위트,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꿰뚫는 냉소,
허무를 유머로 잠재우는 탁월한 기술.
이 모든 것이 한 문장에 응축되었다.
버나드 쇼는 죽음조차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풍자의 제왕’이었다.

노벨상을 거부한 남자
19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그는 “상금은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보다 위험한 발명품”이라며 제도 자체를 조롱했다.
그의 거절과 수락은 모두 퍼포먼스였다.
상금 수령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으로 내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나를 더 열심히 비판하게 만들 거요.”
그는 현실의 모순을 받아들이되, 결코 진지해지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인간과 초인
『인간과 초인』에서 그는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썼다.
이 대사는 묘비명과 맞닿아 있다.
94년의 생애 동안 그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여성 참정권 운동을 목격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써냈다.
『피그말리온』의 엘리자 두리틀은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저 내가 원하는 걸 줘!”라고
외치며 계급 사회를 비웃고,
『세인트 조안』의 잔 다르크는 화형대 위에서
“불꽃은 내 영혼을 태우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들은 모두 쇼의 분신이었다.
죽음마저 극적 클라이맥스로 삼는 그의 연출은,
묘비명에서 절정에 이른다.
“삶이 짧아서 관용 같은 걸 가질 시간이 없다.”(마크 트웨인)
쇼의 유머는 이와 닮았지만 더 신랄했다.
그는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동시에
그 웃음의 뿌리가 부조리함에 있음을 각인시켰다.
장수의 저주
그가 태어난 1856년은 빅토리아 여왕의 전성기였다.
가난으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도서관에서 독학하며 40대에 극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오래 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묘비명에는 장수한 자의 고독이 배어 있다.
초기 소설 5편이 출판사에서 퇴짜 맞던 청년 시절,
그는 이미 인간의 합리성을 의심했다.
“진보를 믿지 마라. 인류는 멸종할 때까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94세의 노구에 이르러서도 그의 펜은
사회주의·페미니즘·채식주의를 향해 날카롭게 굴렀다.
묘비명 속 ‘이런 일’은 죽음 그 자체보다,
장수로 인해 목격해야 했던 인류의 무한 반복 역사를 가리킨다.
웃음의 유산
그의 문장들은 21세기 AI 시대에 새로운 빛을 발한다.
“침묵은 경멸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라는 말은
SNS 시대의 과잉 소통을 예견한 듯하고,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보다 유용하다”는
선언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묘비명이 던지는 질문은 더욱 예리해졌다.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장수가 축복인가, 저주인가?
쇼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묘비명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되돌린다.
웃음으로 허무를 잠재우는 기술 - 그것이 그가 남긴 유일한 해법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적어도 웃어넘겨라.”
영국 시골 정원에 스며든 그의 재는 여전히 속삭인다.
묘비명이 허구라 해도, 그 속에 담긴 진실은 영원히 살아 숨 쉰다고.
King Crimson - Epitaph(1969)
https://youtu.be/ATty9A8txd8?si=5qG38Tqm7payXh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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