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행복

2025. 3. 30. 17:50명상&쉼터/브런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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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춤추다

돈은 종이 한 장, 숫자 몇 자리로 이루어진 무기력한 존재이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는 순간 가장 격렬한 에너지로 변한다. 그 에너지는 때로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기도, 무너뜨리는 폭풍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이 양날의 칼을 들고 살아간다. 어느 날은 칼날을 잘 닦아 빛나게 하려 애쓰고, 또 다른 날은 그 칼에 베이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칼을 들게 하는 본능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족함’을 경험한다. 배고픔, 추위, 두려움 - 이 모든 것들이 돈에 대한 욕망의 씨앗이 된다. 어린 시절, 동전 하나로 사탕을 사 먹던 순간의 행복은 성인이 되어 월급통장을 들여다볼 때의 안도감과 닮아 있다. 돈은 생존의 도구이며, 욕망의 실현자다. 그러나 문제는 이 도구가 점차 목적이 되어버릴 때 시작된다.

 

탐욕은 이성의 경계를 허문다. 마치 바다의 조수처럼 서서히 밀려와 발목을 잡는다. 어느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이미 가진 것의 무게를 잊는다. 부유한 자의 금고는 채워질수록 텅 빈 마음만을 키운다. 탐욕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이기 때문이다.

 

베이지 않기 위한 몸부림

돈이 주는 상처는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 권력과 명예를 좇던 이들이 추락할 때, 주변에서는 “욕심이 지나쳤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욕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부는 자연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만든 것”이라 말했다. 돈 자체는 선악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탐욕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삶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돈은 수단이 되어야지,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돈이 목적이 되면 인간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든다”고 경고했다. 노예는 자유를 잃을 뿐 아니라, 자신이 왜 일하는지조차 망각한다.

 

칼을 올바르게 잡는 법

그렇다면 어디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中庸)’을 강조했다. 과욕과 금욕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돈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필요를 채우되, 탐닉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돈을 ‘흐르는 강물’로 보라. 강물은 고이면 썩는다. 돈도 쓰이지 않고 쌓여만 간다면 썩은 냄새를 풍긴다. 소비, 투자, 기부 - 돈이 움직일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둘째, 나눔의 미학을 익혀라. 베풀 때 비로소 돈은 숫자를 넘어 인간의 온기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가치를 재정의하라. 행복, 자유, 관계 - 이것들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춤

나는 딸 어렸을 때, 함께 저금통에 동전을 넣을 때마다 물었다. “이 돈으로 뭐 할 거야?” 딸은 매번 다른 대답을 한다. “아리스크림 사먹을래요”, “친구에게 선물 줄래요”, “길고양이 밥 사줄래요.”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하찮은 금액이지만, 그 순간 돈은 가장 순수한 기쁨으로 빛난다.

 

돈과의 건강한 관계는 결국 ‘의식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그 날의 소비와 절약을 결정할 때 우리는 자신의 철학을 시험받는다. 탐욕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유혹을 마주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칼날 위에서 춤추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돈은 우리를 배고프게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를 배고프게 할 뿐이다. 그 칼을 손에 쥐고 무엇을 베어낼지, 무엇을 지킬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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