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3. 05:10ㆍ명상&쉼터/브런치스토리
어린 시절, 부모가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난 커서 좋은 부모가 돼야지’하는 다짐을 수도 없이 하였다.
자식을 행복하게는 못 해줘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 부모!
세월이 흘러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좋은 부모로 산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질문과 성찰, 그리고 스스로를 내려놓는 연습의 연속이다.
완벽함을 버리는 용기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우리 부부는 마치 교과서를 외우듯 육아서의 내용을 실천하려 했다. 적정 수면 시간, 영양 균형, 발달 단계별 교육법…. 모든 것을 체크리스트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러나 아이는 책 속의 아이가 아니었다. 밤새 울며 잠을 거부할 때도, 손으로 땅을 파헤치며 장난감을 던질 때도, 나의 계획은 종이 조각처럼 흩어졌다.
어느 날, 아이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던 날 밤,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부모도 사람이야.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 말 한마디가 쇠사슬처럼 조여오던 완벽주의의 굴레를 풀어주었다. 좋은 부모의 첫걸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때로는 엉망진창인 순간도 포용하는 데서 시작됨을 배웠다.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걷기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첫날, 아이가 교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가기 싫었던 모양이다.
"엄마랑 집에 가요!"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달려가던 아내는 문득 멈춰 섰다. 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아내가 서두르는 이유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시간 안에 해내는 효율적인 엄마'라는 타이틀을 위한 것일까?
그날 아내는 15분 동안 아이 옆에 앉아 단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고 한다. 눈물이 멈추자 그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문턱을 넘어섰다.
그 후로 아내는 매일 아침 10분씩 일찍 일어나 여유를 만든다. 함께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보고, 구름 모양을 이야기하며 길을 걷는다.
좋은 부모란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걸을 줄 아는 이라는 것을, 그 작은 발걸음이 모여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처 난 마음을 안아주는 법
중학생이 된 딸이 시험 결과표를 들고 울며 방문을 닫았던 날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화를 참으며 아내는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
"얘야, 네가 슬프니까 엄마도 마음이 아파." 그제야 딸은 엉엉 울며 안겨왔다.
성적표 한 장으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회의 압박...
부모의 걱정이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을 '불만 토론 시간'으로 정했다. 서로의 투정과 서운함을 마음껏 털어놓은 뒤, 항상 마지막엔 꼭 안아주기로 했다.
좋은 부모란 자식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신이 아니라, 그 아픔을 함께 견뎌내는 동반자임을 배웠다.
끝나지 않는 이별 연습
아들이 미국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그의 눈빛에서 흘러나온 기쁨보다 내 가슴을 친 것은 허전함이었다. 유치원 방과 후 내 품으로 달려오던 그 아이가 이제 나의 품을 떠난다. 그동안 '잘 키워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정작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아들에게 해외 송금하는 법, 비행기 표 사는 법, 세탁하는 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탁물을 개는 그의 손길이 서툴렀지만, 한마디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좋은 부모란 아이가 자신 없이 설 때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임을, 때론 실패의 권리를 주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잊지 않기
그렇게 아이들이 크는 동안 우리 부부 머리는 어느새 잿빛으로 변한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살로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온통 인생을 자식 중심으로 살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거실에서 공포 영화를 보았다. 음향과 아내의 비명소리에 아이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엄마, 시끄러워!"라고 불평했지만, 그 소리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엄마도 네가 커가는 만큼 우리의 꿈을 키우고 있어."
좋은 부모란 정답지가 아니라 공책이다. 때로는 지워지고 갈기갈기 찢기기도 하지만, 매일 새로운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살아있는 기록이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동시에 자신을 다시 키운다.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을, 엄격함 대신 온기를, 기대 대신 믿음을 배운다. 어쩌면 부모란 아이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인생을 배우는 자리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부모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하루를 견뎌내고 있으리라.
그 작은 발버둥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 - 그것이 바로 사랑의 무게가 아닐까.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해도, 함께 성장하는 부모는 될 수 있다. 좋은 부모로 산다는 것은, 아이와 내가 서로의 빛이 되어 주는 여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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