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2. 20:14ㆍ명상&쉼터/그림쉼터
그녀는 웃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의 웃음도,
조롱의 웃음도 아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마치 모든 감정을 지나쳐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침묵 속의 웃음이다.
그 미소 앞에 서면 우리는 묻게 된다.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웃는가.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담담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려낸 모나리자,
그 작은 초상은 인류 예술의 가장 큰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녀의 시선은 보는 이의 마음을 뚫고 지나간다.
정면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어느 각도에서도 눈길이 따라온다.
이는 단지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깊이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다.
그 안에는 침묵, 기다림, 혹은 세상을 다 안다는 체념 같은 것이 섞여 있다.

나는 루브르의 복잡한 군중 속에서,
유리벽 너머 그녀와 마주한 적이 있다.
수많은 눈빛들이 모나리자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 세기를 초월한 시선의 무게에도 무관심한 채,
단 한 번의 숨결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모나리자의 배경은 흐릿하다.
산과 강이 뒤엉켜 있는 풍경은 실제와 비현실 사이에 선 경계 같다.

그 안개 낀 배경 위에 선 모나리자는 인간의 삶과 죽음,
환희와 고독,
시작과 끝 사이에 놓인 중립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얼굴 속에 잠든 미소일지도 모른다고.
세상을 살아오며 말하지 못한 감정들,
견뎌온 시간들,
사랑과 미움,
기대와 포기의 균형 속에서 탄생한 표정.
그래서 그녀는 미스터리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우리를 매혹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그림이지만, 그림 이상이다.
시간이 지워내지 못한 얼굴,
감정의 본질을 품은 존재.
그리고 우리는 그녀 앞에서,
언제나 다시 처음처럼 멈추어 선다.
말보다 긴 시선을 보내며,
우리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그녀와 공명하기를 바라면서.
모나리자의 미소는 오늘도 영원의 문턱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말없이,
그러나 결코 침묵하지 않는 얼굴로.

라벨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https://youtu.be/BZSPkidM99E?si=IAvP3siTtUu6pb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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