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6. 13:59ㆍ명상&쉼터/브런치스토리
엄마의 손길은 항상 내 방을 배회했다.
어느 날 청소를 하던 엄마가 내 책상 서랍을 열자 담배갑이 툭 떨어졌다. 숨기고 싶은 일을 들키는 순간이었다.
"왜 내 방을 마음대로 들어와!" 소리쳤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며칠 뒤 서랍 속에 '거북선-1980년대 최고급 담배' 두 갑이 포개져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다시 들어오지 말랬잖아!"
엄마는 조용히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담배를 끊지 못하면 좋은 담배라도 피거라. 아들 건강을 위해서... "
그 말에 갑자기 목이 메였다. 담배 냄새보다 짙은 죄책감이 코를 찔렀다.
엄마는 내가 피우는 청자 담배가 싸구려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다.
담배 종류를 모르던 엄마는 주변에 물어 가장 유해 성분이 적다는 걸 찾아 헤맸으리라.
한땀 한땀 박힌 사랑의 방식이 가슴을 후벼팠다.
나는 담배를 꺼냈다. 거북선 갑 속 은박지를 뜯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입술에 닿는 필터 끝에서 느껴진 건 쓴맛이 아니라, 엄마의 온도였다.
서랍을 닫으며 흘린 눈물이 손등을 적시자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의 사랑은 결국 내 몸속까지 스며드는 것임을.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직도 거북선 두 갑은 내 마음 서랍 깊이 잠들어 있다.
유해 성분 1mg 덜 들어있는 그 담배보다, 엄마의 눈물 1mg이 더 무겁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엄마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엄마에겐 왜 최소한의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바로 나 때문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 응답하라 1988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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