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현실을 만나면

 

 

 

현실의 문턱 앞에서

 

어느 깊은 밤, 천장이 낮게 내려앉은 듯 마음이 조여 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마치 비바람에 휩쓸린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그러나 정작 마음이 바닥을 칠 때,

그 말들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현실은 간단한 주문 하나로 풀리지 않는 퍼즐 같았다.

한 조각씩 맞춰가며

피 멍든 손끝으로 삶을 이어 붙여야 했다.

 

그때 나는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바람 한 줄기에 꺾일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러나 사유할 수 있는 고귀함을 지닌 존재.

그 이중성 속에서,

나는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는 걸 배웠다.

 

고통이 우리를 빚어낸다

 

살다 보면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시련이라는 거대한 바위 앞에 선다.

피할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 바위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왜 나인가?“

 

그러나 그 물음 끝에서 만난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모든 삶은 상처에서 시작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랭클은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도

어떤 이는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마지막 빵 조각을 나누었다.

 

그들의 삶은 말한다.

고통이 우리를 짓밟을 순 있어도

우리의 태도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고.

 

고통은 때로 선생이다.

눈물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절망 속에서 연민을 배운다.

칼 융이 말한 그림자의 통합처럼,

우리가 외면하는 어둠이야말로

가장 진한 빛의 씨앗이다.

 

깨진 조각이 모여 만든 빛

 

살아 생전 외할머니는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가슴이 아플 땐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메밀묵을 젓고, 방아를 찧고,

눈물은 말없이 고운 체로 걸러내듯

고통은 부엌에서 삭여지곤 했다.

그 고요한 인내의 시간은

내게 삶이란 끓는 국물 위에

은은히 떠오르는 향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메우는 킨츠기처럼,

우리는 상처 위에 사랑과 시간을 덧칠하며

더 깊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간다.

 

백내장에 시달리던 모네가

그림자 속에서 더욱 환상적인 색채를 발견했듯,

흐려진 시야가 오히려 본질을 포착하게 만든다.

 

창밖에 첫 새벽빛이 들어온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쏟아진 햇살이

조각난 삶의 파편들을 하나의 빛으로 모은다.

 

이제 나는 안다.

 

신화 속 불사조 피닉스가 재 속에서 부활하듯,

우리도 불행의 재를 밟고 일어설 때 비로소 진정한 날개를 얻는다.

고통은 종착역이 아닌 중간역이며,

눈물은 결코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밭을 적시는 이슬이다.

 

삶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는 고통의 연금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