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그 경계 위의 삶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후, 창가에 앉아 손녀의 그림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문득 말했다. “너는 그림 그리는 게 즐거우냐?” 손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도 어렸을 땐 화가가 꿈이었단다.” 그 말에는 평생 품어온 아련한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손녀의 크레파스는 순간 주저앉았고, 그림 속 꽃잎은 갑자기 무거워져 버렸다. 어른들의 미완성된 꿈은 종이비행기처럼 자식들의 어깨에 착륙한다. 날개를 접힌 채. 자식이란 유령 같은 존재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탄생은 기적”이라 말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우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신비를 가장 가깝게 체현하는 장소다. 그러나 이 기적 같은 시작이 때로는 투명한 감옥이 된다. 부모는 자식 속에서 자신..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