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진 창 안에 고독은 더 뚜렷하다

2025. 6. 6. 18:15명상&쉼터/그림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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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은 투명하지만 벽보다 더 단단한 거리감을 품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나이트 호크스(Nighthawks)’ 속,

늦은 밤의 식당 창문은 마치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가둔 어항 같다.

 

그 속엔 세 명의 손님과 한 명의 점원이 있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정적은 사막보다 넓고,

북풍보다 싸늘하다.

 

 

밤새우는 사람들, 1942

 

 

호퍼는 붓으로 소리를 지운다.

대화도 없고,

눈빛조차 닿지 않는 인물들은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하지만,

실은 모두 안을 향해 침잠한다.

 

여인의 빨간 드레스는 이 밤의 고요를 찢을 듯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고독을 강조하는 불씨처럼만 느껴진다.

마치 사랑도,

욕망도,

꿈도 잃고 이제는 단지 깨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지키는 이들.

그들은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푸른 밤, 1914

 

 

그림 밖의 나는 그림 안의 그들을 보며 묻는다.

왜 우리는 때때로 고독을 찾아 어두운 거리로,

불 켜진 창 안으로 스며드는가?

집이라는 가장 안전한 공간을 두고도,

낯선 공간의 불빛 아래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고독을 끌고,

누군가의 불빛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림 속 인물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얼굴들이다.

 

퇴근길 맥줏집의 모서리,

밤새 켜진 편의점 조명 아래,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그 속의 사람들은 말이 없지만,

삶은 여전히 그들을 끌고 간다.

그리고 그 끌림의 끝에는 언제나 작은 불빛 하나가 있다.

 

그것이 커피 한 잔의 온기이든,

모르는 사람의 어깨너머 풍경이든,

혹은 창밖을 내다보는 낯선 시선이든 간에.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는 말한다.

고독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뉴욕 레스토랑, 1922

 

 

불 켜진 창 안,

서로 침묵하는 그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문득,

누군가에게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빛은 따뜻하지만,

그림자도 깊다.

 

이 밤, 고요히 흐르는 외로움 속에서 나도 한 모금 커피를 마신다.

누군가가 건네주진 않았지만,

이 밤을 견디는 모두에게 건배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창 안에서, 홀로이면서도 함께 밤을 새우고 있다.

 

 

철도 옆집,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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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No.6 F장조 "전원"

https://youtu.be/8wd-bnirOsY?si=nKT1tCM2wR8pDL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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