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뚫고 올라오는 빛
가을이 깊어갈수록 세상은 차갑게 변해간다.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잎사귀들은 붉고 노랗게 타올랐다가 결국 땅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불면 그 위를 걷는 발걸음맽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마치 깨지기 쉬운 것들로 가득 찬 이 계절처럼,
인간사도 때로는 부서지기만 할 것 같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태어난 곳, 만난 사람, 받은 사랑의 양까지 달라 누군가는 추위에 떨고 누군가는 난로 곁에 앉는다. 그러나 차가운 땅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씨앗이 있듯, 불공정함 한가운데서도 삶은 여전히 뿌리를 내린다.
역사는 불공정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왕좌 아래 핏자국이 마르지 않았고, 산업화의 기적 뒤편에는 수많은 이의 한숨이 묻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길을 잃지 않았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공장 굴뚝 사이로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태동했고, 여성들은 투표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바꾼 것은 단지 법의 조항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믿음' 그 자체였다.
고통이 깊을수록 희망의 씨앗은 단단해진다.
지금의 불평등도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싹틀 흙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증명했다.
철학자 니체는 "고통은 깨달음의 일부"라고 말했다. 완벽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유는 아마도 부조리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어릴 적 교정에서 만난 한 소년이 떠오른다.
양팔이 없는 그는 발로 글을 썼다. 수업 시간마다 종이 위에 발가락으로 파묻힌 필체는 비뚤었지만, 그가 옆자리 친구의 공책을 밀어줄 때의 미소는 단아했다.
"너는 왜 항상 웃어?"라는 내 물음에 그는 팔 없는 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가 가진 걸 뺏길 수는 없잖아." 그의 말처럼 불공정함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지 못한다.
상처받을 권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빛이 남아 있다.
세상이 기울어져 있을 때 오히려 균형의 소중함을 배운다. 시인 김수영이 '폭포'에서 쓴 대로 "흐르는 물은 돌을 뚫는다."
저항이란 단지 거대한 것과 맞서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식물이 콘크리트 틈을 뚫고 돋아나듯, 일상에서 고개 숙이지 않는 것 자체가 침묵의 변화가 된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이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받고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
"요즘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그의 중얼거림이 말해주듯, 공정함은 법정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길을 가는 이, 차가운 계단에 담요를 놓고 간 익명의 손길들.
이 미미한 행적들이 모여 언덕을 이룬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은 선명해진다. 2020년 전 세계가 마스크로 숨을 쉬던 시절, 이탈리아 발코니에서는 오페라가 울려 퍼졌다.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앞에서도 사람들은 노래로 응답했다. 마치 전쟁 중 피난처에서 연주된 첼로 소리처럼, 고통과 예술은 는 공존한다. 고흐는 정신병동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고, 앤 프랭크는 다락방 일기장에 "아직도 사람 마음속에 선함이 있다고 믿는다"고 썼다.
이들이 남긴 것들은 불공정한 운명을 압도하는 인간 영혼의 승리다.
단풍잎이 지고 나면 나무는 잠시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땅속에서 차가움을 견디며 다음 봄을 준비한다.
마치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처럼. 불공정함은 끝나지 않을 테지만,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것들을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스카프를 두르고 길거리에서 연탄을 나르는 청년, 전쟁터에서 피난민 아이에게 책을 건네는 의료봉사자, 편견에 맞서 사랑을 선택한 이들의 손짓들이 쌓여 간다. 그 작은 용기들이 모일 때, 세상은 조금씩 기울어진 축을 바로잡는다. 우리가 오늘을 사는 이유는 아직 저물지 않은 노을처럼, 부서진 것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피어날 무언가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