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파도 앞에서
그날, 바다는 예고하지 않았다.
하늘은 낮게 드리워졌고,
파도는 말없이 태어났다.
호쿠사이(1760~1849)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는
그 조용한 예고 없는 순간을 포착한다.
거대한 푸른 손톱 같은 물결이 하늘을 할퀴며,
조각배를 삼킬 듯이 몰아친다.
그림 속 사람들은 작고 연약하다.
그들은 열심히 노를 젓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의 노력은
마치 한 줌 모래처럼 흩어질 듯하다.
그 와중에도 저 멀리,
후지산은 조용히 서 있다.
아무 말 없이, 흔들림 없이.
삶이란 때때로 파도와 닮았다.
우리는 평온하던 하루를 살다가도
갑작스레 덮치는 운명의 물살 앞에 휘청인다.

병, 이별, 실직, 상실, 실패...
어떤 파도는 미리 보이지 않고,
어떤 파도는 보기 전에 이미 와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공포만은 아니다.
그 거대한 곡선 속에는
멈추지 않고 노를 젓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그 파도를 견디려는 의지가 있다.
파도는 부순다.
그러나 파도는 또 밀려나간다.
밀려나간 자리에 다시 숨을 쉬는 생이 시작된다.
그 한순간의 포효는
결국 사라지고,
고요함이 다시 찾아온다.

호쿠사이는 이 목판화를 70세가 넘어서 완성했다.
그 역시 인생의 숱한 파도 속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말했다.
“진정한 화가는 80세 이후에 태어난다.”
삶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조각하며,
끝끝내 파도의 본질을 잡아낸 이는
바로 그였다.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파도가 마치 시간처럼 느껴진다.
훅 치고 들어오는 기억,
한순간에 무너지는 계획,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고 떠나보내야 하는 우리의 숙명.
그러나 그 숙명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노를 젓는다.
어쩌면 그것이 삶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우리는 이미 수많은 파도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나도, 파도 한가운데를 통과해 온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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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https://youtu.be/KDRUTzmLOYQ?si=4kMJ2hMxSp9zoN_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