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쉼터/그림쉼터

샤갈의 마을, 나의 마을

찐박사 2025. 5. 15.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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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마주친 한 폭의 그림.

푸른 하늘 아래 초록 얼굴의 사내와 흰 염소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순간,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며드는 듯했다.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은 마치 동화책 한 편을

펼쳐놓은 듯한 그림이었다.

하늘을 나는 연인, 거꾸로 선 집,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대화하는 인간과 동물.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마음엔 익숙한 꿈의 조각처럼 다가왔다.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기억을 화폭에 새겼다.

러시아 서부의 눈 덮인 마을,

유대인 공동체의 목소리,

아버지의 생선 가게 냄새까지.

 

그림 속 초록 얼굴의 사내는 바로 그 자신이다.

손에 든 나뭇가지는 성경의 '생명의 나무'이자

유년 시절 마을 뒷산의 풍경이다.

염소의 볼에 젖을 짜는 여인은 어머니의 모습일까.

거꾸로 선 집들 사이로 춤추는 소녀는 첫사랑 벨라의 환영일까.

샤갈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며 고향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끌어올렸다.

 

 

                                                                                    샤갈의 도시 위에서

 

 

그의 붓은 색채로 시를 썼다.

파란 하늘은 유년의 추억을,

빨간 꽃은 사랑의 열기를,

노란 수레바퀴는 윤회의 리듬을 담았다.

 

'색채의 마술사'답게 형식주의에 매이지 않고 감정을 직조했다.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틀을 빌렸지만,

그 안에 유대인의 정체성과 낭만을 녹여냈다.

피카소가 "마티스 이후 색을 진정으로 이해한 유일한 화가"라 격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 내리는 마을

 

 

어른이 된 후 뉴욕 MoMA에서

원작을 마주했을 때,

그림 속 풍경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염소의 눈동자에 비친 마을은 여전히 눈 덮인 겨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레스토랑 간판 덕분에  '눈 내리는 마을'로 오해받곤 한다.

이는 샤갈이 의도하지 않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오해야말로 그의 예술이 가진 보편성을 증명하는지 모른다.

관객은 각자의 마을을 투영하며 그림을 완성한다.

 

작품 속 거꾸로 선 집은 현실의 불안정함을,

하늘을 나는 연인은 사랑의 초월을 상징한다.

 샤갈은 전쟁과 박해를 겪으며도 화폭에 평화를 그렸다.

 

<나와 마을>은 고향에 대한 편지이자,

상처받은 시대를 향한 위로다.

 

오늘날 이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과연 내 마을은 어디에 있는가?

눈 덮인 겨울이 아니라 해도,

샤갈의 마을처럼 영원한 봄을 꿈꿀 수는 없을까.

100년 전의 붓질이 오늘의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것은 아마도 '진정한 고향은 마음속에 있다'는 것일 게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1969作)

 

 

눈 내리는 마을" 동화 같은 수면음악ㅣ지친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https://youtu.be/MOLTi3aI7D4?si=30nQ4o7rDHVkjTQ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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