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선택할 때마다 생겨난다
세 갈래 길에서

2001년 봄, 나는 선택의 길목에 섰다. 잘 나가는 금융회사의 많은 월급, 평소 꿈꿔 왔던 방송국의 화려한 스튜디오, 국회의사당의 당당한 현판. 세 곳의 합격 통지서가 책상 위에 놓인 그날,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로 위 차량들의 꼬리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떤 길을 택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금융가는 안정을, 방송계는 열정을, 정계는 권력을 약속하는 듯했다. 친구들은 “넌 정말 운이 좋다”며 부러워했지만, 내게는 세 통지서가 서로를 저주하는 검객처럼 보였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버려진 두 길이 내 잠재된 인생을 훔쳐갈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국회를 골랐다. 대학 시절 사회 부조리를 없애려고 던졌던 돌의 무게만큼 진지하게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가장 ‘나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선택의 그림자
선택 뒤엔 항상 그림자가 따른다. 회사 동료가 “금융권에 갔으면 연봉이 두 배였을 텐데”라고 농담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방송국의 길을 갔다면 최소한 꿈꿔 왔던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달았을 텐데...
내가 선택한 국회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썩은 권력의 냄새만 진동할 뿐 내 이상을 키우기에는 내가 너무 순진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 후로 20년이 지났어도 국회의원이 된 동창의 SNS에 국가적 현안이 올라올 때면 ‘내가 그 길에 섰다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인간의 간사함이다.
“후회는 선택의 대가가 아니라,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 선택이 영원함이 아니니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선택한 판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세 갈래 길 모두 그 안에서 피울 수 있는 꽃이 있었다. 금융가의 안정도, 방송국의 꿈도, 국회의 권력도 결국 내가 그 길에서 어떻게 살아낼지에 따라 빛났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의 정답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정답으로 만드는 용기에 있다.”
버려진 길들은 영원히 평행우주 속에 남겨두라. 내가 걸어온 이 길의 먼지와 별빛을 온몸으로 안고 나아갈 때, 비로소 모든 후회가 밟아 넘어야 할 발판이 된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이다.
설령 외나무다리라 해도 선택해야만 한다.
전진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아님 멈춰 설 것인가.
결국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점은
과거 그 무수한 선택들의 결과인 셈이다.
난 그날의 전화를 받았고 터미널로 향했으며,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린 지금 현재를 맞았다.
그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미련은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는 법이고,
그래서 삶에 정답이란 없는 법이다.
그저 선택한 길을 정답이라 믿고
정답으로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내 지난 선택들을 후회 없이 믿고 사랑하는 것.
그게 삶의 정답이다.” - 응답하라 1988 대사 중